"나는 두 사람 덕분에 음악의 길을 걸을 수 있었다. 이 이웃을 제외하고는 우리 집 반대편에 사는 맹인 점쟁이이다. " 점쟁이는 매일 피리를 불며 한 아이의 견인으로 집안을 왔다갔다한다. 조량선은 그의 순수한 동북단조에 이끌려 매일 그를 쫓아다닌다. 점쟁이의 가족이 알고 나면 조량산을 점쟁이의 안내로 삼으라고 했다. 조량산이 동의했다. 그 후로 그는 나물을 파는 시간을 두 시간으로 압축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점쟁이를 끌면서 자신이 부는 피리 음악을 열심히 들었다. 집에 돌아온 후, 그는 간절히 기억으로 이 노래들을 모방했다. 바로 이런 아름다운 음악들이 조량산의 어린 시절의 어려움을 희석시켰다.
1949 해방 이후 조량산은 마침내 등교 기회를 얻었다. 그는 중학교에 합격한 후 피리를 가지고 현 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음악에 대한 견지 때문인지 1960 년 선양고시 73 명의 수험생 중 눈에 띄어 중앙음악학원에서 유일하게 합격한 수험생이 되면서 관악기를 전공하는 길을 걷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