닝두 금정산 벽허궁은 강서감주에 위치해 있다. 서한 초년, 장작녀장은 산에 올라가 나무를 베다가 남극선옹을 만났다. 그녀에게 복숭아 두 개를 주었고, 장은 하나를 먹었고, 갈증을 잊고, 그림자가 우쭐거렸다. 그 이후로, 그녀는 금정산으로 이사했다-먹지 않고 잠을 자지 않고, 나중에 신선이 되었다. 그녀는 의학을 응용하여 인민을 위해 고통과 질병을 해소하고 인민을 축복했다. 장궐 이후 김경산은 영천관을 건설하여 장조각상을 모시고 있다. 김경산의 영천관은 역사가 유구하다고 들었는데, 고년이 되면 비가 올 때마다' 응영천 실물' 이라는 칭호를 주고, 동굴 안에 서예 편액을 걸어 책을 쓴다고 한다. 이때부터 김경산의 이름이 천하를 널리 알리고, 참배자들이 끊이지 않고, 향불이 매우 성행하였다. 영도 금정산에는 영천사, 삼청궁, 양릉사 세 개의 도관이 있다.
유원연은 일찍이 감남에서의 수도생활을 통해 앞으로 진정한 교육책임자가 될 수 있는 든든한 기초를 다졌다. 나중에 실인은 유랑남으로 망명하여 남인민을 위해 병마를 풀었는데, 바로 초년학의 도학에 의지하고 있다. 유연연이 떠난 후, 그의 제자 보광은 동굴에서 궁무를 처리하여 도관이 나날이 흥성하게 되었다. "진경산기" 에 따르면 당시 양릉사, 실물동, 어정, 보광각, 영암각 등 건물이 있었다고 한다. 김경산에는 산에 오르는 신도들이 끊이지 않는다. 명말, 다른 곳의 도관은 심가의 변화로 인해 파괴되었지만 김경산이 곤경에 빠졌음에도 불구하고 도교활동은 중단되지 않았다. 청대, 유연연 제 13 대 후계자 이자성은 도관 방장을 계승하고, 금정산도교산업을 부흥시키며 기공, 치료, 인명을 위해 힘쓰고, 명성을 널리 떨쳤다.
출처: 도교의 목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