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나라 말년에 이자성 왕은 기세가 큰 농민 봉기를 일으켰고, 후기에 베이징을 성공적으로 점령하여 충정 황제에게 목매달아 자살하도록 강요했다. 이어 이자성은 대순왕조를 건립했고, 우금성과 송헌책이라는 두 가지 중요한 모사와 개국 공신은 각각 승상과 개국군사로 봉착되었다. 이자성의 성과는 주로 우금성과 송헌책의 지도 덕분이다. 이 두 모사는 재능이 넘치고 도술기문도 알고 있다고 한다. 제갈량과 유백온에 비할 수는 없지만 상당히 대단하다.
우금성은 하남 보풍인이다. 그의 아버지와 그의 집은 몇 세대 동안 모두 소관이었는데, 그는 겨우 관직 2 세대라고 할 수 있어서 집안이 비교적 부유하다. 젊었을 때, 다른 사람에게 모함을 당해, 리프트 신분이 박탈당하고, 조정에 배속되어 복무를 했다. 그래서 그는 불만을 품고 이자성의 의군에 가입하여 추장왕의 모사가 되었고, 추장왕에게 현학과 도술에 정통한 마술사 송헌책을 추천했다. 나중에 베이징이 청군에 함락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는 아들을 데리고 청나라에 투항하여 순치년 동안 죽었다. 어떤 사람들은 그가 항복하지 않고 은둔했다고 말한다.
송헌책은 하남 영성에서 점쟁이로 살아온 진정한 귀재이다. 그는 지식이 해박할 뿐만 아니라 각종 수법도 잘 알고 있다. 이자성이 성취할 수 있었던 것은 주로 그 때문이다. 나중에 송헌책이 이자성이 그가 돕고 싶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그는 약간 낙담하여 이 전쟁에 그다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결국 반군은 청나라에 패배했다. 그도 청군 대장인 아지그에게 포로가 되었지만, 기예를 아는 유능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신임을 받아 좋은 대우를 받았다. 그는 자신의 능력으로 만주족을 기쁘게 하며 행복하게 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