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산둥 사람, 일찍이 광서년 간 수재였으며, 이후 원세카이의 훈련에 참가하여, 얼마 지나지 않아 원세카이의 조치 진영에 배정되었다. 나중에 세카이는 후계자가 없어 북양군 전체가 내투에 빠졌다. 이후 국가는 군벌 혼전 시기에 접어들었다. 이때 오씨는 뛰어난 지휘로 강산의 대부분을 다졌다.
그의 직속 상관인 조준은 "오씨가 재채기만 하면 경진은 비가 올 것" 이라고 시큰시큰시큰하게 논평했다. 이에 당시 한 미국 잡지도 오씨를 잡지의 표지로 선정했고, 이는 그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강한 사람이며 우리나라를 통일할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점에서 미국인들은 틀렸다. 같은 해 겨울, 오씨는 장과의 국가통제권 쟁탈전쟁에서 장화유수 () 를 맞았고, 오도 곧 최강에서 이류 군벌 () 으로 바뀌었다.
나중에, 장개석 (WHO) 도 잔여 부대를 소멸시켜 일반인으로 북평에 정착하여 만년을 편안하게 보낼 준비를 해야 했다. 나중에 일본이 또 북평을 점령했다는 것을 누가 알았겠는가. 일본인은 북평정세를 신속히 안정시키려 고위 관리들의 유혹을 이용하려 했다. 오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러나 오씨는 애국적인 사람이라 일본인에게 뇌물을 주는 것을 거절했다. 그가 자신이 추앙받는 것에 동의하지 않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