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번잡한 시대에는 그리스도인의 외로움이 더욱 중요하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고 싶다면, 우리의 마음은 이 세상에 폐쇄될 것이다. 그리스도인 영혼의 외로움은 공간의 외로움보다 더 중요하다. 만약 우리의 마음이 세상을 닫지 않는다면, 우리가 혼자 방에 있다 해도, 우리의 사상이 휴대폰이나 세상의 목소리로 가득 차 있다면, 우리는 진정으로 주님과 교차할 수 없다. (존 F. 케네디, 생각명언) 만약 우리가 마음이 조용하다면, 버스에서 묵묵히 기도한다 해도, 우리는 하느님을 볼 수 있다. 물론, 조건이 허락한다면, 우리는 기도할 때 방해와 유혹을 받지 않도록 혼자 있는 공간을 찾으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신이 사람과 씨름을 했지만 사람이 신을 이겼다는 것은 기독교인들을 매우 납득시킬 수 없다. (윌리엄 셰익스피어, 햄릿, 믿음명언) 신은 만능인데, 어떻게 실패할 수 있단 말인가? 정신적인 관점에서 이 문제를 이해하는 것이 더 쉬울 것이다. 에서는 에서와 야곱을 비교해 볼 때, 에서는 자주 나가서 사냥을 하며 성격이 거칠고 호쾌하다. 제이콥은 하루 종일 텐트에 머물면서 계산에 능하다. 겉으로 보면 에서가 더 남자 같다. 신의 눈에는 야곱의 내면의 인내가 진정한 남자였다. 그는 하나님과 각력하며, 일심으로 승리를 추구하며,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포기하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신이 사람을 보는 것은 잘못이 없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사람을 보는 것은 사람을 보는 것과 같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은 외모를 보고, 주께서는 마음을 본다 (삼첫 16:7). 기록된 바와 같이, "야곱은 나의 사랑이고 에서는 나의 악이다." (로마서. 9: 13). 야곱은 그와 씨름한 사람이 하느님이라는 것을 알아본 뒤 "네가 나에게 축복을 주지 않으면 나는 너를 보내지 않겠다" 고 말했다 야곱이 하나님을 굳게 바라보고 신의 마음을 의지하는 것은 신에게 매우 소중한 것이다. 신은 그가 이겼다고 계산했다. 이것은 그의 마음에 대한 하느님의 긍정이다. 어른과 아이가 씨름하는 것처럼, 아이의 용기를 북돋우기 위해 어른이 일부러 아이를 승자로 만드는 것이 아이에게 가장 큰 격려다.
허벅지 둥지는 인체의 자연력이 가장 강한 부위이다. 하느님이 야곱의 허벅지를 만져 주셨을 때, 그는 절름발이였기 때문에 야곱에게 그가 전혀 몸으로 이긴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 주었다. (윌리엄 셰익스피어, 햄릿, 믿음명언) 정신전쟁에서만 윈윈이 있을 것이다. 혈육전에서 왕왕 양패가 모두 다쳤다. 야곱은 신의 동행과 축복을 받았고, 신은 야곱의 복종과 경건함을 얻었다. 야곱은 이스라엘로 이름이 바뀌었고, 그는 하나님과의 새로운 관계 때문에 새로운 이름과 신분을 얻었으며, 이는 야곱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다.
오늘날 우리는 자연의 몸을 하느님께 맡기고, 하느님께서 그것을 만지게 하고, 하느님께서 처리하게 할 의향이 있습니까?
-응? 진리나와 이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