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자성은 Xi 안을 점령하고 정권을 세운 후 단 두 달 만에 베이징을 돌파했다. 과정이 순조로워 보였지만 이자성은 명군과 10 년 동안 전쟁을 벌였지만 입경 후 정권이 곧 와해되었다. 이자성이 뜻밖에 사망했을 뿐만 아니라, 그가 베이징에 입성한 후 취한 잘못된 조치도 있다.
이자성은 베이징에 들어간 후, 명관에게 노여움을 전하며 무고한 백성을 약탈하고, 오삼계의 아버지, 드롭 장군을 생포하고, 그의 사랑하는 아내를 데려갔는데, 이로 인해 오삼계가 그와 반목하여 원수가 되었다. 나중에 또 청군과 연합하여 베이징을 공격했다. 이자성이 상경한 후의 행동으로 그의 정권은 민중의 지지가 부족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모든 정권이 가장 필요로 하는 힘이다. 인민의 지지가 없으면 이런 정권이 멀지 않아 반란을 일으킨 인민도 진압할 수 없다.
이자성이 베이징에 입성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오삼계와 청군에 의해 베이징을 떠났다. Xi 안으로 도피한 후 이자성의 군대는 원기가 크게 다쳐서 청군의 압력으로 남쪽으로 도망갈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여러 차례의 전쟁을 겪으면서 군대 수가 급격히 줄었다. 이자성은 오살당한 뒤 각지에 흩어져 있던 반청군이 주심을 잃고 즉시 민심을 잃었다. 그 노인이 없다면 중국의 역사는 다시 쓰여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