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금성은 송헌책을 소개하여 1642 이자성 농민 봉기에 참가했다. 송헌책은 매우 열심히 공부하는 학자이다. 그는 도술 천문 지리 점술에 정통하다. 그는 점술로 생계를 꾸려 나가고, 세계를 주유하며, 곳곳에서 그에게 집 느낌을 주었다. 송헌책의 박학으로 서북에서 양을 방목하며 살아온 이자성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이자성은 그에 대한 평가가 매우 높아서, 늘 그에게 계획을 세우고 그를 군사가로 경배한다.
송헌책은 늘 귀신이라는 이름으로 이자성에게 신속히 농민 정권을 세우라고 훈계한다. 명나라의 부패는 곧 멸망할 것이다. 정권을 세워야 인심을 결집시킬 수 있다. 송헌책도' 18 자 주신기' 라는 구호를 내세워 군중을 선동하고 농민 봉기군의 힘을 증강시켰다. 송헌책도 그의 뛰어난 군사적 재능을 보여 주었다. 남양성에서 그는 농민 봉기군에게 우회 포위를 취하는 전략을 지휘하여 명군을 무너뜨리고 포위 공격을 하며 혁혁한 전공을 세웠다. 숭정은 17 년 1 월 이자성 농민 생활이 Xi 안을 돌파하고 대순정권을 세웠다. 송헌책도 적극적으로 정권을 공고히 하기 위한 계획을 세우고, 법제를 제정하고, 관원을 중상하고, 엄정한 상벌을 받아 이자성에 의해 개국 대군사가로 봉쇄되었다.
이자성의 대오가 상경한 후 빠르게 타락하여 개국 재상 우금성을 비롯한 사람들이 향락에 탐닉하기 시작했다. 송헌책은 이 점을 분명히 보았고, 이자성의 엄숙한 군기를 여러 차례 권고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송헌책은 이자성을 포기하고 같은 모사로 일하던 이암을 지지하겠다는 생각을 내놓았지만 이암은 곧 우금성의 비방에 의해 죽임을 당하여 이자성의 부대를 따라 도망쳐야 했다. (윌리엄 셰익스피어, 이기성, 이기성, 이기성, 이기성, 이기성, 이기성, 이기성) 송헌책이 비행 중에 행방불명이다. 그러나 명나라 역사학자 담겸의 문장 한 편에 따르면 송헌책은 청군에 사로잡혔다. 그러나 청군은 송헌책의 점술과 점술 능력을 매우 중시한다. 그의 생명을 살려준 후 송헌책은 옛 직업을 되찾고 전 세계를 여행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