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조극' 이란 바로 정자극과 조극이다. 이에 따라 지방극은 정자극과 조극의 곡조를 바탕으로 지방어조로 노래하며 지방민가와 가무를 동시에 흡수하여 청대 중엽 이전에 발전하기 시작했다.
청나라 건륭년 동안 푸젠회관, 고주회관, 조주회관, 우이회관이 연이어 해구에 건설되었다. 이 회관 앞에는 모두 고정석대가 있어 매년 고향 극단을 모아 해구에 공연을 한다. 어떤 극단은 반교 제자를 개설하고, 어떤 연예인들은 해남도에 정착했다. 예를 들면 광서년 동안, 조안의 유명한 연극가 황원생의 조상은 건륭년 동안 수행과 함께 해남에 정착했다.
이 외국 극단들은 지방 희곡의 발전을 촉진시켜 점차 성숙한 공연 예술이 되었다. 함풍에서 광서까지 시기는 조안극의 대번영 대변화의 시기이다.
광동극 연예인이 해남도로 유입되어 조안극 연예인과 절친한 친구가 되었다. 그들 중 일부는 연극을 가르치고, 어떤 사람들은 전반하여 연기를 하며, 조안극의 번영을 크게 촉진시켰다.
이때, 광동극의 황아, 방자 등의 성강, 그리고 신구 강호는 모두 조안극에 흡수되어, 이런 성강을 바탕으로 해남극 등의 판강을 만들어, 조안극이 점차 곡패체에서 판강으로 바뀌게 하고, 원래의 징고, 소곡, 꽈꽈꽈도 따라서 버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