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범은 제두에서 많은 관심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손권 봉기가 발생한 동남으로 갔다. 오범은 동남부에 와서 손권의 휘하에 직접 뛰어들어 꽤 괜찮은 직위를 얻었다. 오범은 손권 권위에 투항한 후, 그의 별상서를 이용하여 손권의 길흉을 측정하고, 점술전쟁을 하였다. 그 후 그의 점술은 정말 발생하여 그 후로 명성이 크게 높아졌다. 이후 손권 주변에 이런 상황이 있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다.
기록에 따르면, 손권이 막 황조를 토벌하기 시작했을 때, 오범은 점을 치고 손권에게 지금 전쟁을 시작하는 것이 내년까지 기다리는 것보다 낫다고 말했다. 내년에, 유표가 경주에서 죽은 후, 국가도 멸망해야 한다. 그러면 내년에 다시 토벌하러 갈 것이다. 그러나 손권은 오범의 점술을 듣지 않고 혼자 고집을 부리며 출병했다. 출병 후 손권은 이기지 못했다. 그리고 손권은 오범의 말을 들었다.
그래서 오범은 또 점을 쳐서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황조가 잡히고, 결국 손권이 황조를 잡았다. 뒤이어 벌어진 전투에서 오범은 손권 점술을 여러 차례 하며 점술을 할 때마다 모두 이루어졌기 때문에 오범은 손권기를 매우 중시하였다. (윌리엄 셰익스피어, 윈스턴, 전쟁명언) 이후 226 년 오범은 병으로 죽었지만 그의 별은 상속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