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고대는 시대마다 서로 다른 방법으로 정보를 기록했다. 처음에는 밧줄로 묶어서 사물을 기록했고, 나중에는 석기로 거북갑과 수골에 상형문자를 그려 주로 점술과 제왕의 중요한 활동을 기록하는 데 사용되었다. 후세 사람들은 이런 글을 갑골문이라고 부른다. 갑골문은 비교적 성숙한 언어이다. 나중에 청동기가 등장하자 사람들은 청동기에 글자를 주조하여 중요한 제사, 그릇의 소지, 선물과 같은 정보를 기록했다. 이 글은 "청동기 비문" 또는 "종정문" 이라고 불린다. 갑골문과 청동기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모두 귀족이지만, 문자의 출현은 별도의 상층건물에 의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당시 백성들은 나무껍질, 대나무, 심지어 수피와 같은 다른 기록 방법을 가지고 있었다. 춘추전국과 진한 시대로 발전한 만큼 문자정보에 대한 수요가 이전 세대보다 많이 늘었기 때문에 목제인은 일종의 문자전달체로서 우리에게 익숙하다. 동시에 실크 (실크 책) 와 동물 가죽에도 문자 기록이 있거나 석두 위에 새겨져 있다.
동한 시절 정보기록사에서 큰 사건이 발생했다. 바로 채륜제지였다. 채륜은 이전에도 제지술이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지만, 중국 한나라 이후 사람들이 종이로 정보를 기록했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 획기적인 일을 우리는 줄곧 지금까지 고수해 왔다. 카메라, 녹음기, 심지어 컴퓨터가 나오기 전까지는 이런 정보 기록 방식만이 이렇게 오랫동안 널리 사용되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