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으로 회개하는 사람은 반드시 회개하지 않은 사람에게 죄를 인정할 것이다. 그들의 마음이 하나님에게서 벗어났거나 그들의 마음이 눈이 멀었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복음의 빛은 그들을 비출 수 없었다 (고둘 2 참조). (4: 4) 그러므로 그들은 자신의 더러움과 부패를 보지 않을 것이며, 물론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사람이 하느님께 회개하는 마음을 부여받는다면, 그는 과거에 한 말과 행동이 죄로만 가득 차 있는 것을 분명히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반드시 하느님 앞에서 무릎을 꿇고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하느님의 용서를 구할 것입니다. (데이비드 아셀, Northern Exposure (미국 TV 드라마), 용서명언)
침례 요한이 회개한 말을 전할 때, 성서는 우리에게 이렇게 알려 준다. "그때에 예루살렘과 유대인 온 땅과 요르단 지역 사람들이 모두 요한에게 나가서 그들의 죄를 인정하고 요르단 강에서 그의 세례를 받았다." —마 3: 5-6. 여기서 우리는 사람들이 복음을 듣고, 양심이 신에게 비춰지고, 자신이 유죄인 것을 보고, 마음을 죄에서 신으로 옮기면 자동으로 자신의 죄를 인정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참회는 진정으로 참회하는 사람이 동반해야 하는 표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참회는 구원의 조건이 아니다. 일부 전도인들은 성서를 오해하고 죄를 한 사람의 구원에 필요한 조건으로 여기기 때문에, 청중에게 나서서 죄를 고백하도록 격려하거나, 제창하거나, 재촉하거나 암시하는 것은 편파적인 관행이다. 성경은 죄를 구원의 조건 중 하나로 열거한 적이 없다. 참회는 참회의 필연적인 현상이거나, 진정으로 참회하는 사람은 반드시 죄책감을 느낄 것이다. 하지만 회개하고 죄를 고백하는 것은 구원의 조건이 아니다. 구원은 순전히 신의 은혜에서 나온 것이고, 구원은 인간의 행동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참회와 참회를 구속의 조건으로 삼는다면, 구속은 반드시 어떤 행동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복음의 진리에 어긋난다.
참회가 구원의 조건이라면, 구원을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평생 저지른 모든 범죄에 대해 하느님의 용서를 구해야 한다. (존 F. 케네디, 용서명언) 하지만 사실, 사람이 평생 저지른 범죄는 영원히 기억할 수 없는 범죄라면, 기억하지 못하는 범죄는 용서할 수 없는 것이 아닌가? (윌리엄 셰익스피어, 햄릿, 용서명언)
참회와 구속은 관련이 있다. 반면에 참회와 구속은 관련이 있다. 참회와 구속의 관계는 한 사람이 매우 불명예스러운 병에 걸린 것과 같다. 그는 결코 인정하거나 치료를 받지 않는다. 어느 날 그는 자신을 속여 의료를 피하는 것이 옳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자신이 아프다는 것을 인정했다. 그는 의사를 만나 더 이상 그를 속이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는 의사에게 자신의 병세를 고백했지만, 그렇다고 그가 완쾌되었다는 뜻은 아니다. 건강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의사의 치료가 필요하다. 죄인의 구원도 죄를 고백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과 그리스도의 구속에 의한 것이다. 참회는 구원의 필연적인 경험이지만 구원의 직접적인 원인은 아니다.
참회 (참회) 란 하느님의 입장에 서서 범죄로 비난하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에는 하나님, 나, 죄의 세 가지 측면이 있습니다. 하나님과 죄는 양끝에 있고, 나는 중간에 있다. 범죄는 내가 하나님을 떠날 때, 나는 죄와 함께 있다. 아담은 죄를 짓자마자 하느님으로부터 도망쳤다 (창 3: 8). 죄는 너를 하나님으로부터 갈라놓는다 (서 1: 2 1). 참회는 하느님께 돌아가 자신이 한 일이 죄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죄의 반대에 서서 비난을 받다. 그러므로 신의 빛을 받고 죄에 대한 깊은 감정과 깊은 증오를 가진 사람이 비로소 자신의 죄를 진정으로 참회할 수 있다. 죄에 대해 무감각하고, 범죄와 죄를 평범한 것으로 여기는 사람들은 무심코 인정했을 뿐, 전혀 죄를 시인하는 것이 아니다. (윌리엄 셰익스피어, 햄릿, 죄명언)
한 초등학교에서 학생들은 고개를 들어 선생님을 보고 교실을 떠나 운동장으로 놀러가는 것을 두려워했다. 한 명의 학생만 교실에 있다가 예쁜 칼을 보고 욕심을 부리다가 훔쳤다. 모두 함께 교실에 갔을 때, 주인은 칼이 없어진 것을 발견하고 선생님께 보고했다.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물었다. 모두가 그것을 훔치지 않았다고 말했다. 강의할 때 선생님은 한 학생이 감히 선생님을 만나지 못하는 것을 몰래 관찰했다. 선생님은 즉시 그에게 물었다. "너는 왜 감히 나를 쳐다보지 않느냐? 칼을 훔쳤어요? 아이는 오랫동안 말을 하지 못하고 전전긍긍하며 인정했다. "네. 나의 죄는 이미 나를 따라잡아서, 나는 머리를 들 수가 없다. 이 죄악은 내 머리보다 더 많다, 나는 마음이 춥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