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수석 군사 이름은 송헌책인데, 이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이자성은 이 군사가 확실히 계획을 잘 세우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자성을 따를 때 송헌책은 이자성을 위해 효과적인 전략을 제시했다. 이자성은 송헌책의 계략을 통해 대순왕조를 세웠지만 전반적으로 당시 대순왕조는 만청에 저항할 힘이 없었다.
만청과의 전투에서 이자성의 군대는 점차 쇠퇴에 빠졌다. 당초 이자성은 만청 병사들에 의해 경성으로 밀려났다. 1645 년, 이자성은 후베이 통성현에서 살해되었다. 그 이후로 대순왕조는 멸망을 선언하고 이자성을 따르는 송헌책도 만청 병사들에게 포로가 되었다.
질문을 받았을 때, 송헌책은 영감을 받아 만주족 병사들에게 그가 점쟁이라고 말했다. 그가 점쟁이라는 말을 듣고, 만청 병사들이 그를 놓아주었다. 그 당시 만주족 사람들은 여전히 점술을 믿고 싶어했다. 그들은 점술이 그들에게 어느 정도 행운을 가져다 줄 수 있다고 믿는다. 이 때문에 신동 송헌책은 자신이 점쟁이라고 거짓말해 죄수로 전락한 난처한 처지에서 벗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