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우가 죽은 후, 그 비길 데 없는 충성과 출중한 무력으로 백성들의 광범위한 숭배를 받았다. 이렇게 큰 민간 인기라면 불도 양대 문파가 당연히 합류할 것이다. 도교는 관우를 보호신으로 봉한 뒤 그를 관제군, 복마다 등으로 발탁했다. 불교는 단지 하나의 전설을 세웠을 뿐이다. 스님은 관우의 머리 없는 죽은 영혼을 뒤집어 관우의 죽은 영혼도 도살칼을 내려놓고 불교의 호법이 되었다.
장비에 대한 이야기는 비교적 적다. 고대에는 장비를 숭배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관우가 부상하면서 장비는 점차 잊혀졌다. 송 () 나라 이전에는 장비 () 가 줄곧 성황 () 같은 작은 신 선녀 () 였다. 청나라에 이르러서야 옥제 수하의 음양순사로 묘사되었지만 관우보다 크게 뒤떨어졌다.
이상하게도 관우와 장비는 모두 신화됐지만 두 사람보다 더 강력한 제갈량은 신화되지 않았다. 성과를 논하려면 제갈량이 없으면 촉한이 성공할 수 있을까? 제갈량이 죽은 후, 전 세계 사람들, 특히 쓰촨 사람들은 모두 그를 숭배하고 향을 피웠다고 한다. 그리고 무후사의 민간 사찰은 많지만 명확한 신위는 없다.
제갈량은 정통 유교 사의사로 도교나 불교와는 무관하다. 순수한 유교 자식으로서 제갈량의 성선은 좀 부적절한 것 같다. 그리고 유가와 도가 불교의 추구는 다르고 유가는 성성을 추구한다. 역사를 보면 유가에는 선현이 많다. 천지를 세우고, 백성을 위해 태어나고, 전사를 잊지 않고, 사후의 사단, 천하의 합은 유교 자식의 좌우명이다. 이런 사상은 불도 사상과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제갈량은 신선이 될 수도, 신이 될 수도 없고, 현이 될 수밖에 없다.
우리가 전에 말했듯이 제갈량은 민간에 무후사, 제갈묘와 같은 제사 장소가 많다. 하지만 사실 이 제사장소들은 모두 통일된 이름, 무후사, 제갈묘는 백성들이 약속한 속칭 중 하나일 뿐이다. 고대에 도관은 신을 숭배하는 곳이고, 절은 조상에게 성인을 숭배하는 곳이었다. 제갈량은 신이 아니라 성인이 된 것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