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강희가 황위를 옹정에게 물려준 것은 옹정이 탁월할 뿐만 아니라 조정에서도 강한 지위와 통치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장남상속제는 중국 이래 가장 엄격한 권리 변경 방식이다. 그러나 서한 분쟁 이후 강희가 옹정에게 권력을 넘겨주는 것도 장남제도의 폐단의 필연적인 결과다. 때때로 먼저 태어난 장남은 재능이 부족할 가능성이 높다. 역사적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조조는 권력을 바꿀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을 생각해 냈는데, 그중에서도 조비와 조철이 특히 두드러졌다. 그리고 그는 국가 사무를 처리하는 능력이 강하지만 조조의 권리를 물려받지 못한 것도 장남제도가 가져온 폐단이다. 강희가 옹정에게 권력을 넘긴 것은 사장이 법정을 다스릴 힘이 없어 자신의 위신을 세웠기 때문이다. 옹정은 일찍이 강희가 이재민 문제를 해결하도록 도왔고, 조정에서도 강한 명성과 지위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계승제도는 이와 관련하여 큰 정치적 파문을 일으키지 않을 것이다. 당시 강희는 일부러 점쟁이를 초청해 자신을 위해 자신의 법원이 몇 년을 더 버틸 수 있는지 계산했다. 점쟁이는 강희에게 재능이 넘치는 옹정 후손에게 권력을 맡기면 몇 세대를 이어갈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주장은 또한 옹정이 민간과 조정에서 명성을 입증하고 있다.
둘째, 강희는 사랑 때문에 14 자 옹정을 황제로 선택했고, 옹정은 조정 뒤의 지지율이 다른 후계자보다 훨씬 높았다.
관련 사료에 따르면, 강희와 옹정의 관계는 그의 모든 아들 중에서 가장 좋았고, 옹정이 어렸을 때 강희는 줄곧 그를 위해 국사를 처리했다. 교육 방면에서 강희도 옹정의 교육에 대해 매우 관심을 가지고 있다. 물론 옹정도 우수하고, 시를 쓰고 문장 쓰는 것도 어느 정도 기초가 있다. 나중에 강희가 국고 공허에 직면하여 옹정은 이 문제를 해결하고 당시 조정의 부패에서 어느 정도 모범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