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자성을 언급하면 모두들 낯설지 않을 것이다. 이자성, 일명 돌격왕, 농민 출신. 명나라 말년에 그는 농민 봉기를 이끌고 봉기군을 결성하여 결국 대명산을 전복시키고 자신의 정권을 세웠기 때문에 역사상 한때 휘황찬란했다. 이자성 봉기는 확실히 매우 성공적이어서 인재가 출중하다. 실력 외에 운도 많다. 이 기간 동안 이자성도 자신의 군사를 가지고 있는데, 이름은 송헌책이다. 이자성이 살해된 후 송헌책은 이미 도망갔기 때문에 살아남았다.
노래 시안 (西安) 책략은 이자성의 군사로,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많은 계략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자성이 임초를 공격할 때 큰 도움을 주고 많은 의견을 주었다. 이자성 봉기에서 송헌책은 우회전략을 발명했다. 봉기군의 장비가 장병보다 확실히 낮기 때문에 유연한 타법으로 적을 공격해야 하기 때문에 우리도 승리를 거두었다.
송헌책도 이자성으로 하여금 스카우트를 설립하게 하고, 신체의 장점을 이용하여 짧은 칼을 들고 성벽을 기어오르게 했다. 속도가 매우 빠르고 유연하여 대명의 장병들이 공포에 떨게 했다. (윌리엄 셰익스피어, 햄릿, 전쟁명언) 또한 송헌책은 사람들의 심리를 잘 알고 있다. 이자성이 위신을 세우는 것을 돕기 위해, 그는 많은 구호를 외치며, 이자성의 이미지를 형성하기 위해 많은 민간 이야기를 엮었다. 그래서 이런 조치들도 효과적이어서 이자성은 곧 민심을 얻을 것이다. 그러나 이자성은 득세한 후 오만해졌다. 그는 자주 궁중에서 술을 마시며 즐기는데, 분위기가 매우 열악하여, 곧 청군에 의해 성을 돌파하여 대패하였다.
이자성은 창황이 탈출할 때 한 무리의 농민들에게 죽임을 당했고, 송헌책은 이때 자신이 점쟁이라고 거짓말을 하여 살길을 얻었다. 그 이후로 송헌책은 줄곧 익명을 유지했다. 그는 여전히 인파 속에서 점쟁이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어 점쟁이의 능력으로 목숨을 건졌고 청군에게 잡히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