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우의 전략적 방향은 줄곧 북방이었고, 한나라 복원은 그의 책임이었다. 그래서 주요 작전 방향은 양양과 남양을 겨냥한 것이다. 오동에게 수비는 상대적으로 공허하다. 그는 손권이 경주남군을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을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그는 관련 전략 준비를 전혀 하지 못했다.
둘째, 조조가 경주남군을 은밀히 돕는 것은 전략적 요지이며, 북은 양양 남양, 남양, 동쪽은 건예를 공격할 수 있다. 조조가 가장 원하지 않는 것은 유비가 경주를 점령하는 것이다. 유비는 한적이 한가를 돕는 두 가지 목표가 있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조삼은 손권이 경주를 점령하는 것을 받아들였다.
그래서 조조 는 화이 난 에서 철수, 동우의 군사적 압력을 완화하고, 한중 증병, 유비 가 동구 할 겨를이 없게 했다. 이것은 분명히 손권에게 경주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다. 손권은 이 점을 이해하고, 기회를 틈타 경주를 공격했다.
셋째, 유비와 관우의 모순은 한헌제에게 봉된 적이 있다. 이 칭호는 관우의 마음속에서 매우 중요하다. 유비가 익주에서 왕이 된 후에도 유비의 관우에 대한 표창은 이 작위가 중요하지 않다. 나는 유비가 보낸 사자에게 물었다. "내가 봉한 것은 무엇인가?" 유비는 당시 천자가 아니었고, 천자만이 봉후를 할 수 있었다. 이것은 유비에 대한 명백한 불만이었다. 관우가 경주를 지키고 있을 때, 더 이상 유비의 지배를 받지 않게 되었는데, 이 모든 손권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는 유비가 익주를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관우를 구하기 위해 모든 병력을 투입했다. 군사력으로 볼 때, 오동의 군대는 관우보다 현저히 우월하다.
조조는 아이를 낳는 것은 손중모처럼 해야 한다고 말했다. 무력가치로 볼 때 관우는 손권보다 강하지 않을 것이며, 전략적 가치로 볼 때 관우는 손권의 적수가 전혀 아니다. 이로부터 관우가 패한 것은 이미 확정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