뮌헨 공난 다음날 버나우 당시 황마 의장인 버나우 대표는 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트로피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수여할 것을 제안했지만 이 제안은 통과되지 않았다. 또한 버나우는 중천인 스티파노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입단해 붉은 악마가 난관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라고 설득하기도 했지만, 이 거래는 영국 발이 항상 스티파노가 영어를 할 줄 모른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또 한 가지 주목할 만한 행동은 버나우가 당시 리그 랭킹 9 위였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58/59 시즌 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추첨에 특례로 등장시키는 것을 도왔다는 점이다. 이는 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개혁 전 유일하게 우승하지 못한 팀이었지만, 이 제안은 결국 영족총에 의해 강력하게 거절당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재건축 초기에는 팀 붕괴, 재정 상황이 가장 큰 어려움이었다. 레알 마드리드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게 대출을 제안했지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거절했다. 어려움이 많더라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재건 중에도 직접적인 경제 원조를 받지 않았다. 아마도 바스비의 관점에서 볼 때, 이것은 거인이 견지해야 할 자존심과 교만이다. 바스비의 유일한 희망은 당시 유럽의 패주 황마와 모금 친선경기를 벌이는 것이었지만, 버나우는 주저하지 않고 받아들이고 황마가 받아야 할 출연료를 낮췄다. 이렇게 1959- 196 1 기간 동안 레알 마드리드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몇 차례의 친선 경기를 치렀고, 심지어 경기 일정이 매우 긴박한 상황에서도 레알 마는 나서지 않았다. 유럽 패주 황마와의 대결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불후의 정신을 전달하고 그에 상응하는 자금 지원을 받았다. 더 중요한 것은 재건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유럽 패주와의 직접적인 경쟁을 통해 차근차근 자신의 격차를 찾고 좁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