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의 제정 고원은 영보시 양평진에 위치해 있으며, 삼문협시에서 80 킬로미터 떨어져 있다. "사기" 기록에 따르면 옛날 후경산의 피해가 심하여 황제는 곤륜산에서 경산으로 와서 시찰을 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단병을 정련하기 위해 그는 제 1 산의 구리를 채취하여 호수를 끌어들여 경산 아래 주조하였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황제가 주조하고, 황룡이 와서 황제의 하늘을 맞이하고, 백성들이 애원하는 것은 그를 놓아주지 않는 것이다. 그들 중 일부는 옷 가운을 잡아당기고, 어떤 사람들은 손발을 잡아당기고, 그의 금부츠를 잡아당기고, 그의 가죽을 벗기고, 그의 수염을 뽑았다. 사람들이 황제의 부츠를 그가 주조한 곳에 묻자 이곳은 사람들이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는 곳이 되었다. 황제릉은 높이가 300 미터, 길이가 5000 미터이다. 산등성이의 서쪽 끝에는 높이가 6 미터, 둘레가 42.5 미터인 흙더미가 있는데, 이를 황제릉이라고 한다. 영묘 남서쪽에는 용수구가 하나 있는데, 용수구가 떨어지는 곳이라고 한다. 이곳에는 용수초가 자라고 있는데, 용수초가 바뀌어 주위에 아무것도 없다고 한다. 장안고도, 하코곡관, 관관 사이에 위치해 있어 전란으로 파괴되었지만 역대에는 수선 재건이 있었다. 현재 복원된 주요 유적은 선전 세조궁 산책로 묘실 공주 궐루 등이다. 하늘, 땅, 사람의 신들, 토지신, 조상을 상징하는 큰 놋쇠 세 개를 주조했다.
황제는 하남 영보 수산의 청동으로 경산 기슭에 구정을 주조하기도 했다. 딩은 국가 권력의 상징이다. 한 시인이 말한 바와 같이, "고금의 흥폐물을 묻고자 한다면, 하로에서 문제를 탈취해 주십시오." " 황제보정은 보정단의 중궁에 두었고, 다른 팔정은 각각 에딩딩, 장수, 채명, 석고, 안정정, 정봉정, 지못, 사병정, 팔괘에 따라 진열되었다.